260830 '여호와로페' 하나님 품에서 다시 살아나는 영혼(시편23:3)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기대하는 교우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중에는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며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그 안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가 쌓여 있는지 저는 느낍니다. 오랜 시드니 생활의 무게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들 속에서 "이 정도면 됐다" 싶다가도 다시 무너지는 마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또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들을 보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오늘 시편 23편 3절의 말씀은 그렇게 지쳐 계신 분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지치고 상처받고 무너진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그 회복의 비밀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내 영혼이란 무엇입니까?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을 때, 사람은 '생령'이 되었습니다. '영혼'은 육체와 분리된 어떤 영적 부분만이 아니라, 나의 몸과 마음과 영, 지식과 감성과 의지,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하나로 통합된 나의 전 존재, 전 인격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는 것은 인생의 어느 한 부분만을 치료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전체를 원래 만드셨던 그 모습으로 되돌려 놓으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소생'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시편 23편 6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에도 쓰이는데, 곧 소생이란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그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지쳐 있습니까?
첫째, 삶 자체로 인해 지쳐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목자와 양은 목초지가 부족해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습니다. 우리 역시 매일 출근하고,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양육하고, 렌트와 모기지와 노후를 준비하며 겉으로는 괜찮은 척 살아갑니다.
둘째, 공격받아 상처를 입었습니다. 목자의 시야를 벗어난 양이 늑대에게 노출되듯, 우리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뜻밖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믿고 맡긴 사업 자금을 떼이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가장 큰 위로를 받아야 할 신앙 공동체 안에서 오히려 말 한마디에 깊이 베인 분도 계실 것입니다.
셋째, 스스로 자초한 상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의 성공을 좇다가, 정작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 말입니다. 가족을 위한다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했다가, 아이들이 자란 후에야 관계가 이미 멀어졌음을 깨닫는 것처럼요. 우리 모두는 회복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여호와 로페 —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5장, 이집트를 떠난 지 사흘 만에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에서 찾은 물은 쓴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좋은 물을 주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하던 백성들이, 광야 여정을 통해 그분이 자신들의 삶에 직접 개입하시는 분임을 알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나뭇가지를 던지자 쓴 물이 단물로 변했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창15:26절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고, 나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여호와 로페는 물만이 아니라 그들의 불신과 원망,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까지 치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목자를 따라 거친 광야를 걸어온 양이 마침내 풀밭에 눕고 시냇물가에 쉬게 될 때, 그 모든 피로와 상처가 치유됩니다. 바로 거기서 영혼이 소생됩니다.
하나님의 품에 이미 안겨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나를 내치시고, 회개해야만 다시 그 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한 분들은 이미 하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예수께서 이미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는 그 품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이 아니라, 이미 안겨 있으면서도 딴짓을 하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서도 발버둥치듯, 우리도 하나님 품에 안겨 있으면서 불평하고 조급해하며 살아왔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회개입니다.
영혼이 소생되는 자리 — 예배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잠길 때 소생됩니다. 그 시간이 바로 예배입니다.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에게 오아시스가 생존의 조건이듯, 예배는 우리 영혼에게 다음 한 주를 살아낼 수 있게 하는 생명의 우물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졌다"고 말하는데, 이는 마른 땅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모습과 같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애써 무언가를 올려드리는 자리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이 위에서부터 쏟아지는 자리입니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넌 늘 부족해"와 같은 말들이 우리 안에 상처를 새겨 놓았다면, 예배는 그 위에 반복해서 다른 음성을 들려줍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딸이다, 내 아들이다." 그 음성이 나이테처럼 매주 쌓일 때, 옛 상처는 서서히 옅어지고 새로운 결이 자라납니다. 그래서 예배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습관이며 리듬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살다 보면 "이번 주는 너무 지치고 바빠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예배를 놓치곤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치고 무너진 순간이야말로 예배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우물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사막 한가운데서 쓰러지기 직전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이렇게 적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예배를 '시간이 남으면 가는 곳'에서 '한 주의 첫 순서'로 옮기십시오. 주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짧게라도 기도로 하루를 여십시오. 예배 중에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찬양의 가사 한 줄, 말씀 한 구절을 붙들고 "이것이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라고 되뇌어 보십시오.
그리고 오늘 받은 말씀 한 구절을 적어 한 주간 다시 꺼내 보십시오.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시편51:10-12절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에 올바른 정신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나를 내쫓지 마시며, 주님의 거룩한 영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자원하는 심령을 나에게 주어 붙들어 주십시오" 이것이 영혼의 소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광야 끝에서 부르는 노래
요한복음 10장 10절은 말합니다. "나는 양이 생명을 얻고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 풍성한 생명은 환경이 바뀌어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광야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잠길 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 호주에서의 삶이 여전히 광야처럼 느껴지는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 먼저 하나님 품에 안기십시오.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소생시킵니다.
여호와께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경험 없이 살아가는 것은, 푸른 초장에 앉아 있으면서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 물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앞에 나아가느냐입니다.
오늘 지쳐서 오신 분이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호와 로페,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지쳐 있음과 받은 상처와 자초한 부끄러움까지 다 아시며, 그 모든 것을 안고 품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아"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예배하십시오. 그곳에서 여러분의 영혼이 소생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