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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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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o min
Kim Jo min

260913 무너진 자리에서 열린 하늘 문

정형외과 의사들은 말합니다. 뼈가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자리는,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부러지기 전보다 더 단단해진다고요. 몸은 골절 부위에 '가골'이라는 여분의 뼈세포를 덧대어 보강합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제대로 고정되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회복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러진 뼈도 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견고함으로 시작되는 자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 부러짐과 무너짐의 순간을 지납니다. 몸이 부러지기도, 마음이 무너지기도,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계획과 소망이 부셔지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제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새로운 생명과 견고함을 심어 가십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늘 문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첫째, 가장 낮은 자리에 선 야곱

오늘 본문의 야곱은 인생의 밑바닥에 서 있었습니다. 가진 것도, 의지할 사람도, 돌아갈 곳도 없이 낯선 들판 한복판에 홀로 누웠습니다. 하늘을 천장 삼고, 돌을 베개 삼은 그 초라한 밤은 야곱의 밑바닥을 말없이 보여줍니다. 우리도 저마다 그런 밤을 지나옵니다. 애쓰고 애썼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때, 무엇을 위해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조차 흐릿해질 때. 애써온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밤새 뒤척이던 그 시간, 몸과 마음이 바닥까지 소진되었다고 느낄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 마음이 시린 어느 하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 밤, 그 자리에서 하늘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밑바닥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되는 지점이었습니다.

     

둘째, 바닥에서 열린 하늘

야곱이 돌 하나를 베고 잠든 그 밤, 그는 꿈에서 땅에서 하늘까지 닿은 사닥다리와, 그 위로 오르내리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았습니다. 잠에서 깬 야곱은 고백합니다. 창세기 28:16-17 "주님께서 확실히 이 곳에 계시는데,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로 통하는 문이로구나."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만나려면 마음이 정돈되고 형편이 나아진 다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은 그가 가장 초라하고 무력했던 자리였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은혜의 논리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스스로 무엇을 해낼 수 없다고 느끼는 바로 그 자리가, 오히려 하늘이 가장 가까이 열리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시편 42:5은 고백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지금 느끼는 지침과 낙심을 억지로 감추기보다, 그 마음을 붙들고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셋째, 값없이 주어진 언약

더 놀라운 것은 야곱이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회개도, 어떤 조건도 없이 그저 잠들어 있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와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8:13,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나는 너를 떠나지 않겠다." 야곱의 자격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도망자였고 빈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먼저 찾아오셔서 언약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실패했고 가장 자격 없다고 느끼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먼저 손을 내미시는 것—그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넷째, 다시 일어서는 광야학교

성경 속 인물들의 공통점은, 크게 쓰임 받기 전 반드시 바닥을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왕궁의 왕자였던 시절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 여겼지만, 살인죄로 광야로 도망친 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무력함을 경험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고, 그는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얻습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만만하게 주님을 위해 죽겠다고 장담했던 그 밤, 오히려 세 번 주님을 부인하며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의 자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확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결코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확신이 산산이 부서지고 난 뒤에야,


하나님은 비로소 그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신명기 8:2은 말합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낮추셔서 시험하셨습니다." 낮추심과 시험하심은 벌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진짜인지를 드러내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엘리야도 갈멜산의 큰 승리 다음 날, 로뎀나무 아래 주저앉아 "이제 그만 죽고 싶습니다" 탄식할 만큼 지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먼저 재우시고 먹이신 뒤에야 "조용하고 여리게 속삭이는 소리"로 다가오셨습니다(왕상 19:12). 우리가 무기력할 때 하나님이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책망이 아니라, 쉼과 회복입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허전함과 무기력함조차, 우리로 하여금 사람의 열심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다시 붙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일 수 있습니다. 그 견딤의 시간 동안 우리 신앙의 뿌리가 가장 깊이 내려갔음을 고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광야학교는 성적표를 주지 않지만, 우리 영혼 깊은 곳에 결코 흔들리지 않을 기초를 남겨 줍니다.

     

다섯째, 함께 세워가는 축복의 통로

야곱에게 주어진 이 언약에는 놀라운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 28:14, "땅 위에 있는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 덕분에 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바닥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일어서는 것도 결국 개인의 회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때, 우리 공동체 전체가 함께 일어서고, 그 일어섬이 서로를 향한 복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도 이런 이야기가 낯설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지치고 무력했던 시절, 스스로도 신앙이 형식적으로만 흘러간다고 느끼던 어떤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낮았던 그 시절, 새벽마다 붙든 말씀과 공동체의 기도 안에서 그는 전혀 다른 힘을 발견했고, 지금은 오히려 지친 이들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다가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바닥이, 그를 무너뜨리는 자리가 아니라 더 깊이 빚어지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세워지는 것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작은 통로 하나면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지친 이의 곁에 조용히 다가가 앉는 것,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안부를 먼저 묻는 것. 힘이 빠져 손을 놓았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 이 작은 걸음 하나하나가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통해 흘려보내시는 복의 통로입니다. 거창한 결단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이번 주일, 한 사람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한 번 더 함께 기도하는 그 작은 실천이 쌓여, 우리 공동체 전체가 다시 온기를 되찾아 갈 것입니다.

     

나가는 말 — 진짜 사다리를 만나다

야곱이 보았던 그 사다리는 사실 예고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훗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볼 것이다." 야곱이 사다리 위에서 오르내리는 천사들을 보았다면,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 사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부서진 우리 사이를 잇는 진짜 통로는 돌기둥이 아니라 십자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겪으신 그 밑바닥과 극한의 고독을 생각하면, 우리가 겪는 어떤 좌절과 무기력도 결코 우리를 삼킬 만큼 크지 않습니다. 그분이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셨기에, 우리의 어떤 바닥도 그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부러졌던 뼈가 다시 붙으며 더 단단해지듯, 여러분이 지나고 있는 이 지치고 낮은 시간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누웠던 그 밤이, 훗날 그가 평생 기억하는 은혜의 자리가 되었듯, 우리가 지금 지나고 있는 이 광야도 언젠가 돌아보면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 계셨던 자리로,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더 단단해진 자리로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다시는 넘어지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지혜는 다릅니다. 넘어짐 자체를 피할 수는 없어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면, 우리는 이전보다 더 단단한 사람으로, 더 단단한 공동체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날 밤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이제 홀로 걷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품고 걷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완벽하게 회복된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서툴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그 확신으로 서로를 붙드는 공동체, 그것이 오늘 우리가 다시 세워가야 할 벧엘입니다.


오늘 이 시간, 야곱처럼 함께 고백하십시오. "주님께서 확실히 이곳에 계시는데, 우리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지쳤던 손을 다시 맞잡고, 멈췄던 걸음을 다시 떼어 놓으십시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낮은 자리가 곧 하늘로 통하는 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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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 Sun Oh
Jong Sun Oh
14. Sept.

야곱의 기도가 우리들의 기도와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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