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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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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o min
Kim Jo min

260906 날개 짓을 멈추지 않는 두레교회(살전1:3-4)

십구 년, 낯선 세계 위에 세워진 상상의 공동체

오늘은 우리 교회설립 19주년을 기념하고 또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9년의 발자취가 가지런하고, 평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사의 구비와 고비속에서도 동행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 역사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데살로니가 교회 이야기는, 흔들리고 아파하면서도 다시 서로를 향해 날개를 펴게 된 한 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낯선 땅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댈 곳이 없었기에 서로가 서로의 언덕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 절박한 마음자리에 조금씩 오해와 서운함과 갈등이 스며들었습니다.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하고, 서운함이 쌓이고, 얼굴을 마주하기가 조심스러운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는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오늘 이 말씀 앞에 정직하게 마주하고 싶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역시 세워진 지 겨우 2년, 압박과 핍박 속에 급히 세워진 작고 취약한 공동체였습니다. 바울은 그곳에 겨우 3주 남짓 머물렀을 뿐입니다. 그 불안한 시작 위에서 2년 뒤 고린도에서 편지를 쓰며, 완벽하지 않은 이 교회를 향해 놀라운 고백을 터뜨립니다. 그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자 초대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제1장 · 유기체로 숨 쉬는 삶 — 뿌리내림과 스며듦의 영성

교회는 정교한 기계나 거대한 건축물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듯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자 '정원'에 가깝습니다.

정원에는 잡초만이 아니라 돌도 있고 메마른 흙도 있습니다. 갈등과 상처도 이 정원의 일부입니다. 문제는 갈등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흙을 우리가 다시 파헤치고 돌을 골라내며 새 생명을 기다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워진 지 불과 2년, 여전히 위태롭던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바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이 모든 곳에 알려졌습니다"(살전 1:8). 그들의 삶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등을 돌리지 않고, 다시 서로를 향해 돌아섰기에 '스스로 말하는 복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생명력의 비밀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믿음이 빚어낸 역동적인 삶(Work of faith), 사랑이 짊어진 수고(Labor of love),, 소망이 만들어낸 견고한 인내(Patience of hope).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일상에서 호흡하듯 살아낸 삶의 모세혈관이었으며, 창립 19주년을 맞은 우리 두레교회가, 오해와 갈등과 상처의 계절을 지나며 다시 걸어가야 할 생명의 길입니다.

     

제2장 · 믿음의 행위 — 날개를 움직이는 것

헬라어 에르곤 테스 피스테오스(ἔργον τῆς πίστεως)는 '믿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행위'를 뜻합니다. 단순한 교리적 동의나 내면의 확신에 그치지 않습니다.

갈등의 자리에서 믿음의 행위란 무엇일까요. 마음이 풀리지 않아도 먼저 손을 내미는 것, 억울함이 남아 있어도 험담 대신 침묵을 선택하는 것,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꿀벌이 날개를 접고 가만히 있다면 꿀을 만들 수 없듯이, 믿음도 관계의 자리에서 날개를 움직여야 화해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이 발이 되고 손이 되고 입이 될 때, 그것은 비로소 갈라진 관계를 향한 복음이 됩니다.

     

제3장 · 기대는 식탁 공동체 — 오해와 상처를 넘어서

교회는 원래부터 서로 기대는 자리였습니다. 마가복음 2장 15절, 예수님은 세리 마태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십니다. "잡수시다"로 번역된 헬라어 카타케이마이는 본래 '비스듬히 기대다'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잔치 자리에서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도 세리들에게 기대고, 세리들도 예수님께 기대어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세리는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세리의 집에 들어가 몸을 기대고 밥을 드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따져 묻자 예수님은 답하십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


우리 안에도 이런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래도 옳다, 저 사람이 문제다—그렇게 서로를 정죄하고 판단하고 죄인 취급하는 마음. 그러나 예수님의 식탁에는 옳은 사람과 죄인이 구분되어 앉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 있었습니다.

     

인간(人間)이라는 한자어를 생각해봅니다. 사람 인(人), 사이 간(間). 인간은 곧 '사람 사이'라는 뜻입니다. 두 사람이 점점 친해지면 두 사람 사이가 무언가로 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를 무엇으로 메우느냐에 따라 관계가 결정됩니다. ‘사이가 좋다’는 말이 있듯이 사랑으로 메우면 연인과 벗이 되고, 오해와 정죄, 미움으로 메우면 원수, 담이 됩니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이에도 크고 작은 섬들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섬으로 가는 다리를 무엇으로 놓느냐 하는 것입니다.

     

식탁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의 만남 사이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우리 사이가 성령으로 메워질 때, 우리는 연약한 죄인이지만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는 화해가 성령의 역사로 가능해집니다. 그때 우리의 만남은 밥맛 나는 교제, 살맛 나는 친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해와 상처로 벌어진 그 틈에 성령께서 들어오실 때, 우리는 다시 서로에게 기대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제4장 · 사랑의 수고 — 상처 입은 곳에 먼저 다가가는 손길

'사랑의 수고'라는 표현 속에는 땀 냄새가 납니다. 헬라어 코포스 테스 아가페스(κόπος τῆς ἀγάπης)의 '코포스'는 탈진할 정도의 수고, 몸이 고달플 정도의 헌신을 뜻합니다. 사랑이 관념에 머무를 때 그것은 한낱 감정에 불과하지만, 사랑이 '수고'와 만날 때 비로소 생명을 살리는 힘이 됩니다.


지금 우리 공동체에서 사랑의 수고라는 구체적인 수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가령 오해를 풀기 위해 먼저 찾아가 말을 거는 수고, 상처받은 사람 곁에 조용히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고, 갈등의 한복판에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화해를 위해 기도하는 수고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살고,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사십니다"(요일 4:16). 지금 우리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우는 것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조용한 사랑의 수고입니다.

     

제5장 · 소망의 인내와 택하심 — 갈등을 넘어서는 정체성

헬라어 휘포모네(ὑπομονή)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압력 아래서도 굴복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능동적 인내를 뜻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로마 제국의 압제와 핍박, 이단의 침투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은 큰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살전 1:6). 갈등과 환난이 있다고 공동체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오해와 상처가 우리의 마지막 모습이 아닙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폭풍 속에서도 날개를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19년의 역사도 이 소망의 인내로 엮어진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압니다"(살전 1:4).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누가 먼저 상처를 주었는지가 우리의 본질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갈등은 우리를 흔들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은 흔들지 못합니다. 이 정체성을 붙들 때, 우리는 서로를 다시 형제자매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50년을 향하여 — 서로에게 기대는 하늘 숲

빌 위더스의 노래 "Lean On Me"처럼, 우리 모두는 기대어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때로 우린 아파할 수 있습니다. 때로 슬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언제나 내일이 있습니다. 나에게 기대세요, 당신이 강하지 못할 때, 내가 친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서로의 상처에 입 맞추며 십자가 사랑으로 함께 불러야 할 노래가 바로 이 노래가 아닐까요. 저 혼자 힘만으로 설 수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필요합니다. 서로 기대며,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의 교회입니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갈등과 오해가 깊어질 때 분열하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앞선 세대가 물려준 신앙의 유산 위에 새로운 복음의 유산을 써 내려가는 은혜의 자리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19년의 역사를 가슴에 품고, 오해와 상처의 골짜기를 지나 새로운 50년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갈등과 오해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라는 복음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깨가 되어주고, 예수님의 품이 되어주며, 서로에게 기대어 울 수 있는 우리,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너와 나, 더불어 숲을 이루어 오해와 상처를 딛고, 하나님께서 더욱 살갑게 사랑하시고, 더욱 살뜰히 사용하시는 교회로. 그 꿈을 단단히 붙잡고,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나아가는 아름다운 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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